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LP640 오디오 장착 리뷰 by 일여섯
템플릿코드 : 20090529-lamborghini
제품명 : 람보르기니 순정 오디오 시스템 빌드
옵션 01 :
옵션 02 :
옵션 03 :
권장가격 : 1,500,000원 (공임 only)
장착업체 : 일여섯 서비스 네트워크
장착, 구매문의 : six1@111111.co.kr
    : 0505-520-5250
       
람보르기니 로고 이미지
LP 640
무르시엘라고
BMW 3시리즈 M3 세단 아이나비 3D 내비게이션 아이원 장착리뷰 by 일여섯 시작하며…
2007년식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New LP640입니다. 터프가이들의 로망이죠? 순정 오디오 시스템이 장착되지 않고 수입된 차량이라 순정 오디오 시스템을 그대로 장착하는 작업을 진행했네요. 함께보시죠
자, 람보르기니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이야기 해볼까요?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질투심? 시기심?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사업가로 성공하고 엔쵸페라리를 찾아 갈때까지 람보르기니의 창시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스포츠카에 대한 열망이 있었지만 직접 이런 괴물들을 만들어 낼 정도로 꽂혀있진 않았는데요.

트랙터사업으로 완전 부자가 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남아 돌아 가는 돈으로 다른 부자들 처럼 당시 최고급 스포츠카들을 사들이기 시작 했습니다

오… 그러나 최고의 메케닉으로 성장해온 그에게 당시 스포츠카들, 특히나 엔초페라리 선생이 제작한 차량들의 기계적 단점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몇가지 단점을 지적, 개선방향을 제안하는 편지를 엔초페라리 선생에게 보내고 그를 찾아갔는데…

이미 오만해질 대로 오만해진 엔초 페라리 선생께서는 람보르기니 선생을 만나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열받은 람보르기니 선생이 ??

그간 몰두 했던 자신의 트랙터 회사, 트란스포르마트레 이외에 자동차 공장을 하나 더 세우게 되는데요. 볼로냐 교외의 산타가나에 초 현대식 자동차 공장을 건설 해버린거죠. 그리고 당대 최고의 자동차 기술자들을 불러 모으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최고의 기술자들이란…
알파로메오와 페라리를 거친 지오트 비자리니, 페라리로 시작해 마세라티에 몸담고 있던 샤시설계 장인 장파올로 달라라, 마세라티의 젊은 엔지니어 파올로 스탄자니, 뉴질랜드 출신의 테스트 드라이버 보브윌레스입니다.

엔초페라리 선생에게 개무시 당했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선생은 오로지 “페라리 타도”만을 생각하며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엔진은 페라리 처럼 12기통을 고집 했지만…. 대부분의 페라리 엔진이 3,300cc 였다면? 람보르기니는 3,500 cc! 페라리가 SOHC 였다면? 람보르기니는 DOHC! 페라리의 트랜스미션이 4단 이었다면? 람보르기니의 트랜스 미션은 5단! 대부분의 페라리가 리지드 리어 엑슬을 채용했다면?? 람보르기니에서는 앞바퀴 독립 현가 방식을 채용!! 그 당시의 첨단 기술인 이러한 방식의 메카니즘들은 프랑코 스카리오네가 디자인한 바디로 포장되고…. 드디어!! 1964년 제네바 오토쇼에서 최초의 람보르기니인 350GT가 선보이게 됩니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선생이 만들어낸 새로운 GT 는 조용하고 멋진 스타일을 가졌으며 운전하기 쉬웠다고 합니다. 기술적으로 월등히 진보 되어있던 그의 GT는 페라리의 그 어떤 양산차 보다 빨랐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선생은 본격적으로 페라리 따돌리기 대작전을 펴게 되는데요. 68년에는 완전 새로운 컨셉의 이슬레로(Islero)를 , 70년에는 새로운 섀시의 자라마(Jarama)를 생산합니다. 급기야 68년에는 4시터의 슈퍼 스포츠카라 불리우는 에스파다(Espada)를 선보여 세상을 놀라게하죠.

그러나 정작 람보르기니를 정상에 올려놓은 모델은 따로 있었으니….

그 이름도 저명한!! 미우라 였습니다. 1966년에 이미 최고시속 260km를 넘겨버린 이 미드쉽 스포츠카는 레이스를 무척 좋아했던 젊은 설계팀, 달라라-스탄자니-윌레스 등의 아이디어에서 태어나게 되었답니다. 많은 초호화 럭셔리 젊은이, 늙은이들이 미우라에 찬사를 보내자 급기야 페라리도 미우라 처럼 미드쉽 엔진을 따라하게되는 상황까지 가게되었죠.

이 점은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선생의 짓밟힌 자존심을 되 찾아 주는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허나….근데 이게 왠 운명의 장난 이란 말입니까? 상황이 이쯤 되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선생은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어지게 됩니다.

뭐, 생각보다 수지타산이 나오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지만, 일등의 자리에 올랐고 격차도 많이벌어졌으니 이젠 지루해졌다 생각한 모양 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회사 람보르기니를 스위스의 실업가 조르즈 앙리로세티에게 팔아버리고 운브리아 지방의 농장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마련,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흙에서 난 자 흙으로 돌아간다고 누가 그랬죠? 아…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선생이 은퇴한 후에도 람보르기니는 창업주의 혼을 담아 카운타크라는 궁극의 스포츠카를 선보였으며 이에 대한 찬사는 람보르기니를 정상 그 이상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르시엘라고, 레벤톤등 람보르기니는 꾸준한 생산을 해오고 있으며 자동차에대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선생의 열정과 사랑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작 작업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못했군요;;;;

이상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에 순정 오디오 시스템 작업이었습니다. by 일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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